문화
단 1초도 쉴 틈 없다! 지메르만이 보여준 전율의 100분
기사입력 2026-01-14 13:47
피아노의 거장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2년 만에 한국을 찾아 클래식 팬들의 심장을 다시 한번 뛰게 만들었다. 지난 1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그의 리사이틀은 공연 시작 직전까지 연주 곡목을 비밀에 부치는 이색적인 전략으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메르만은 사전에 연주 목록을 알리지 않겠다는 본인의 철학을 고수하며 프로그램북에도 작품 설명을 일절 담지 않았다. 대신 주최 측은 현장에서 관객들에게 급히 인쇄한 A4 용지를 배포했는데 그 안에는 짧게는 40초에서 길게는 10분에 이르는 총 24개의 전주곡 목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야말로 거장이 준비한 종합선물 세트 같은 무대였다.이번 공연의 가장 큰 반전은 첫 곡이었다. 많은 관객이 거장의 주전공인 쇼팽이나 바흐를 예상했지만 지메르만이 선택한 첫 곡은 폴란드 작곡가 로만 스타트코프스키의 전주곡 1번이었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지메르만은 조국 폴란드의 선배 음악가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약간의 불협화음이 섞인 이 곡으로 손을 푼 거장은 곧이어 쇼팽, 바흐, 슈만, 라흐마니노프, 거슈윈, 드뷔시 등 시대를 넘나드는 전주곡의 향연으로 관객들을 안내했다.
특히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전설적인 타이틀에 걸맞게 그가 들려준 쇼팽은 독보적이었다. 지메르만은 빗방울 전주곡으로 유명한 15번과 16번을 휴식 없이 연주했는데 이 대목이 백미였다. 서정적이고 잔잔하게 시작된 15번의 빗방울이 어느덧 굵은 소나기로 변해 16번의 폭발적인 속사 연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시각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관객들은 거장의 손가락 끝에서 빚어지는 소리의 질감에 완전히 압도당하며 숨을 죽였다.
바흐의 전주곡 배치 또한 치밀했다. 1부와 2부 초반에 각각 배치된 바흐의 곡들은 전형적인 형식과 독특한 변용을 대조시키며 관객들이 바흐의 예술 세계를 다각도로 체험할 수 있게 배려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연주를 넘어 곡의 구조를 완벽히 이해하고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지메르만의 학구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공연 후반부를 장식한 드뷔시의 무대에서는 지메르만의 섬세한 색채감이 빛을 발했다. 요정의 춤 연주가 시작되자 마치 공연장 천장에 요정이 날아다니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괴짜장군과 민스트렐에서는 강렬한 리듬감이 터져 나와 관객들의 몸을 들썩이게 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가진 무한한 음색의 스펙트럼을 증명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공연의 대미는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2번이 장식했다. 종소리라는 부제로 알려진 이 곡은 피아노 한 대가 뿜어내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웅장했다. 지메르만은 마치 오케스트라 전체가 연주하는 듯한 거대한 음량을 뽑아내며 공연장을 압도했다. 곡이 끝나고 지메르만이 10여 초 동안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고 정지해 있자 롯데콘서트홀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정적에 휩싸였다. 그 침묵조차 연주의 연장선으로 느껴질 만큼 완벽한 마무리였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약 5분 동안 기립박수를 보내며 거장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지메르만은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를 앙코르곡으로 선사하며 화답했다. 이번 서울 공연의 감동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지메르만은 15일과 18일 서울에서 추가 공연을 가진 뒤 20일 부산 22일 대구로 자리를 옮겨 한국 관객들을 만날 계획이다. 지방 공연 역시 연주 목록은 당일 현장에서 공개될 예정이라 클래식 애호가들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거장이 선사한 이번 전주곡의 향연은 단순한 연주회를 넘어 음악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어루만질 수 있는지 보여준 완벽한 시간이었다. 한겨울 추위를 녹이는 지메르만의 따뜻하고도 강렬한 타건은 이번 겨울 한국 클래식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